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넋두리 마당

無識하면 사람 잡는다.

뙤미모루 2024. 3. 3. 21:53

無識하면 사람 잡는다.

鶴山 2020.08.16 12:03


 

살다 보면 느끼게 되지만 흔히들 예부터 전해오는 말들은 거의 철리에 가깝다고 수긍하면서 고개를 숙이지 않을 수 없다.


우리 사회에는 무식하면 용감하다거나 사람 잡는다는 얘기가 오랜 세월에 걸쳐서 회자되고 있으니, 과연, 오늘날에도 누구나 저절로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하지만, 요즘 한국 사회의 돌아가는 꼴은 무식하면 용감하다거나 사람을 잡는데, 끝나는 게 아니라, 이제는 나라까지 잡아먹게 생겼다는 것을 알아야만 할 때다. 


특히, 우리나라에 친북친중의 종북빨갱이들이 설치고 있는 꼴을 보고 있노라면, 하루에도 몇 번씩, 무식하면 용감하다거나 사람 잡는다는 얘기를 하지 않을 수 없는 지경에 이르고 있다.


물론, 이런 현상의 원흉은, 지난 70여 년간에 걸쳐 대한민국 사회를 현재와 같이 세계가 인정하고 있을 정도로 풍요롭게 만들어 놓은 앞선 세대에 참으로 부끄러울 정도로, 물질적인 풍요 속에서 정신적으론 너무나 피폐한 다수 국민들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따라서, 현 시국은 스스로 자기 발등을 찍은 꼴이 되었다는 것을 깨달아야 마땅할 텐데도, 아직도, 이 나라의 현주소를 제대로 판단하고 있지 못하는 부류들이 있으니, 참으로, 한심하게 느껴진다.


현재와 같은 대한민국의 자유민주주의가 나락으로 추락되고 있는 상황 속에서도 강 건너 불구경 하듯, 이기심과 아집이 습성화된 비겁한 무리들은 무덥고, 비까지 내리는 서울 도심의 거리에서 행동하는 자유민주주의 수호를 부르짖는 국민들의 모습을 보면서도 부끄러움조차 느끼지 못하고 있을 것이다.


하긴, 설마로 망하는 그때라도 시원한 에어컨 바람 속에서 간혹 생각만이라도 하고나 있을까 싶다.


하지만, 그 시원한 에어컨에다 대형 TV를 시청하면서, 앞으로, 원자력 발전소를 페기 하고, 자연친화적인 청정에너지로 전력을 생산하겠다는 미사여구로 포장된 멋있고 아름다운 청사진을 제시하고 있는 현 정권의 권모술수와 선전선동 속에서, 왜 멀쩡한 원자력 발전소 더구나 미국이나 캐나다 등에서는 40년 + 40년을 사용하는 발전소를 30년 만에 폐기의 수순을 밟고 있는지, 원자력 발전소라는 용어를 감추고, 왜 하필이면, 핵 발전소라는 용어로 바꿔 사용하는지를 깨달아야 할 것이고, 틈이 나면, 대덕연구단지 원자력연구원에 들려서, 원전의 불모지에 오늘의 원전기술을 확보하는데  초석이 되신, 51세의 나이로 작고하신, 서경수 박사의 흉상 앞에 서서 반성해 보기 바라는 마음이다.


요즘, 부동산만 가지고 야단법석인데, 어디 이것뿐이랴! 이건 빙산의 일각일 테고, 이젠 앞으로는 개소린 차를 대체하여, 청정에너지 전기차 시대를 연다는 데, 원전을 페기하고 있는 한국전력의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적자 속에서 인상의 고삐를 당기게 되는 전기요금도 기대하기 바란다.


이 모든 게, 대한민국 국민의 자업자득의 결과요, 무지몽매(無知蒙昧) 한 것들에게 놀아나고 있는 개, 돼지 국민의 업보(業報)라고 해야 할 것이다.


 

* 아래의 칼럼을 옮겨와 함께 참고로 게재함.



無識이 사람잡는다.

無識이란
이희승 국어대사전을 찾아보니 “아는 것이 없다”
“어리석고 우악스럽다”
우악스러운 것이 무엇인가 또 보니 “모질고 우락부락한데가 있다”
는 것이 무식한 사람에 대한 사전적 정의다.

바꾸어 말한다면 아는 것이 없거나 어리석고 성격이 우악
스러우면 무식한 사람일 가능성이 많다는 것이다.
유식은 그 정도를 가늠할 수 있으나 무식의 깊이는 끝이 없다.
그러므로 무식은 채워서 줄일 방법 외에는 없다.
그 무식을 채우는데 양질의 지식과 교양 선택을 위한 혜안을
기르기 위해 교육을 받아 그것을 채워가므로 인격체가 되어가는
것이라 생각한다. 대개 사람들은 교육을 많이 받았거나
지식을 많이 축적하여 지위가 높아진 사람이라면 비례해서
교양을 갖추었을 것이라는 것으로 생각하지만 그것은 착각이다.

시쳇말로 “무식하면 용감하다”는 말이 있다. 일반적으로 무식
하면 용감하다는 것이 아닐 것이다. 그 용감함 속에, 우락부락함에,
어리석음 속에 따뜻한 사랑이 없을 때 진짜 무식한사람이 되는
것이다. 군인의 용감무쌍함도 고향에 계신 부모형제에 대한
사랑과 더 나아가서는 조국을 사랑하고 목숨 받쳐 지켜야할
만큼의 큰 가치로운 대상을 위함일 때 진정 용감해 질 수 있는
것이며 찬사를 받을 수 있다.

그러나 우리 생활 주변에서 무식의 극치를 달리는 사례를 쉽게 찾아
볼 수 있다. 무식한 사람일수록 고집이 세며 조금의 양보도 허락
하지 않는다.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이 있다. 자기가 알고 있는
것이 그것뿐이니 다른 사람의 말을 받아들일 마음의 여유가 없다는
말이다. 설사 나중에 자기의 생각이 틀렸다는 사실을 알았더라도
가소로운 자존심 때문에 자기의 고집을 꺾을 수 없는 것이며
결국 상대방에게서 자존심이 만신창이가 되어서야 굴욕적 저자세로
무식의 소치를 시인하는 경우를 흔히 볼 수 있다.

무식한 사람은 대개 자기의 주장을 관철하기 위해 기세등등하여
기가 약한 사람은 그에 상대하여 자기의 주장을 펴고 이해
시키려고 하지만 무식한 사람의 막무가내에 처음에는 주춤할 수
밖에 없다. 그러나 큰소리나 등등한 기세는 초반 기선을 제압하는
데는 효과가 있을지 모르나 지속적으로 초반의 기세를 유지 하기란
어렵다. 그러나 바로 그 초반의 기세가 기가 약한 사람에게 치명적
인 타격을 주어 마음에 큰 상처를 안겨 주게 되기도 한다.
바로 무식이 사람을 잡을 수 도 있다는 말이다.
무식하다는 것이 자랑이 아닐 바에는 채워서 줄이려는 노력을
해야겠지만 그전에 사랑하는 맘을 가슴이 흠뻑 젖도록 채워야
진짜 무식하다는 소리를 듣지 않을 수 있다.

2004년 2월 27일
 


출처: https://parkbongsooo.tistory.com/418 [괭이밥의 시와 사진]